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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모이면 현명해진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저는 정반대였습니다. 2008년, 도쿄에서 처음으로 목돈을 손에 쥔 저는 그 돈을 들고 생애 첫 차를 샀습니다. 전철 노선이 거미줄처럼 뚫린 도시 한복판에서, 혼자 사는 독신 직장인이. 지금 돌아보면 어이가 없지만, 그때는 차 키를 건네받는 순간까지 실수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열정과 야근이 만든 두둑한 통장, 그리고 어리석은 선택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정말이지 일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세월이었습니다. 휴일이고 주말이고 가리지 않고 출근했고, 야근은 당연한 루틴이었습니다. 쉬는 날이 생겨도 딱히 갈 데가 없었습니다.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동료와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게 전부였습니다.
즐길 거리가 없으니 쓸 돈도 없었고, 야근 수당과 휴일 출근 수당이 쌓이면서 통장 잔고가 눈에 띄게 불어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돈이 손에 잡히자마자 욕망이 이성을 앞질렀습니다. "자동차가 갖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차를 사버린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젊은 나이에 목돈이 생기면 재테크나 저축부터 생각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건 이성이 감정을 이기고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차를 사던 날의 들뜬 기분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달릴 곳 없는 도심에서 감가상각을 온몸으로 맞다
차를 샀는데 막상 몰고 나갈 일이 없었습니다. 도쿄 시내는 전철과 지하철이 워낙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어지간한 거리는 대중교통이 압도적으로 빠르고 편합니다. 주차장은 구하기도 어렵고, 찾았다 해도 시간당 주차비가 상당합니다.
그래도 거금을 들인 차를 그냥 세워둘 수는 없었습니다. 억지로 도쿄 외곽으로 나갈 계획을 세우거나, 새벽에 혼자 시내를 빙빙 도는 드라이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뻥 뚫린 도로에서 핸들을 잡으면 잠깐은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었습니다.
결국 "운전하고 싶다는 욕구 하나 때문에 필요하지도 않은 차를 굴리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게 됐습니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난 뒤 차는 중고차 시장에 팔렸습니다.
여기서 감가상각이란 자산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치를 잃어가는 현상을 뜻합니다. 자동차는 특히 감가상각이 빠른 자산 중 하나인데, 신차는 구매 직후부터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자동차의 잔존가치(Residual Value)는 구매 후 1년 이내에 신차 가격의 10~20% 이상이 사라진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잔존가치란 일정 기간 사용 후 남아 있는 자산의 시장 가격을 의미합니다. 저는 이걸 이론이 아니라 실제 통장으로 확인하는 쓴 경험을 했습니다.
도심 차량 유지비를 구성하는 주요 항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자동차세: 배기량 기준으로 매년 부과되는 보유세
- 자동차 보험료(Car Insurance Premium): 의무 가입 항목으로, 도심 거주자는 사고 위험이 높아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 주차비: 도심일수록 월정액 주차 계약이 필요하며, 도쿄 도심의 경우 월 3~5만 엔 수준이 일반적이었습니다
- 연료비 및 유지보수비: 실제 운행 거리와 별개로 기본적인 점검 비용이 발생합니다
이 항목들을 합산하면, 실제로 거의 타지 않는 차 하나를 유지하는 비용이 상당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래도 도심 카라이프를 포기 못 하는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도심에서는 차가 필요 없다고들 말하지만, 저는 그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효율성과 가성비만 따지면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차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심리적 공간'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도심의 대중교통은 촘촘하지만, 만원 전철 안의 소음과 밀착된 공간은 생각보다 큰 피로를 줍니다. 반면 차 안은 문을 닫는 순간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독립 공간이 됩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아무 눈치도 보지 않고 조용히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공간. 이 점은 제가 차를 팔고 나서 오히려 더 크게 느꼈습니다.
이동의 자유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대중교통은 노선과 시간표에 묶여 있습니다. 늦은 밤 무거운 짐을 들고 막차를 놓쳤을 때의 그 막막함을 한 번이라도 겪어본 분이라면 이해하실 겁니다. 차가 있으면 새벽이든 비가 오든 내가 원하는 시간에 바로 출발할 수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승용차 등록 대수는 2023년 기준 약 2,100만 대를 넘어섰으며, 수도권 집중도 여전히 높습니다(출처: 국토교통부). 대중교통이 잘 갖춰진 수도권에서도 차를 포기하지 않는 인구가 이렇게 많다는 것은, 단순히 이동 효율만으로 자동차 소유 여부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방증입니다.

도심 차 구매, 이렇게 따져봐야 후회가 없다
제 경험상 도심에서 차를 사기 전에는 반드시 이 질문을 먼저 해봐야 합니다. "나는 이 차를 일주일에 몇 번이나 실제로 움직일 것인가?" 저처럼 막연히 "가지고 싶다"는 욕구만으로 결정하면, 차는 움직이지 않는 고정 지출 덩어리가 됩니다.
TCO(Total Cost of Ownership)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총 소유 비용이라는 뜻으로, 구매 가격뿐 아니라 세금, 보험, 주차, 연료, 수리비 등 차를 보유하는 동안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합산한 금액입니다. 도심 거주자라면 TCO를 계산해 보면 대중교통이나 카셰어링(Car Sharing) 대비 자가 차량의 실제 비용이 얼마나 높은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카셰어링이란 필요할 때만 시간 단위로 차를 빌려 쓰는 서비스로, 도심 단거리 이동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료에 따르면 차량 운행 비용 중 고정비가 변동비보다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 주행 거리가 짧을수록 km당 실질 비용이 급격히 상승한다고 분석합니다(출처: 한국교통안전공단). 저처럼 거의 타지도 않으면서 차를 유지하는 것은 재무적으로 상당히 비효율적인 선택입니다.
결국 도심에서 차를 구매할 때 후회를 줄이려면 다음을 먼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주말 외출이나 지방 방문 등 실제 사용 빈도가 월 4회 이상인가
- 주거지에 전용 주차 공간이 있거나 월정 주차 계약이 가능한가
- 심리적 독립 공간의 가치를 경제적 부담보다 더 크게 평가하는가
이 세 가지 중 두 가지 이상 해당된다면 도심에서의 카라이프가 만족스러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도 해당이 안 된다면, 저처럼 몇 달 만에 중고차 시장으로 보내는 결말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놈의 운전이 뭐라고 수천만 원을 써야 했는지, 지금도 가끔 헛웃음이 납니다. 그래도 새벽 도쿄 도심을 혼자 달리던 그 짧은 시간은 분명 즐거웠습니다. 도심에서 차를 고민 중이라면, 욕망보다 사용 계획이 먼저입니다. 솔직히 이건 제가 직접 비용을 내고 배운 교훈입니다. 구매 버튼을 누르기 전에, 딱 한 번만 더 냉정하게 따져보시길 권합니다.